커뮤니티 Q&A 상세 페이지
DM 016 캐스크 기확전 <캐스크 만들기> 2편. 사이즈 고르기
캐스크가 위스키 맛의 80퍼센트 이상을 좌우한다는 것이 많은 위스키 메이커들의 공통된 의견이에요. 곡물에서 위스키 원액이 될 때까지는 일주일도 안 걸리지만, 오크통에서 숙성하는 기간은 수년 이상 되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한 결론이죠.
그렇다면 오크통의 어떤 면이 맛에 영향을 줄까요? 나무의 재질, 캐스크의 모양과 크기, 전 숙성 술의 종류 등 맛에 영향을 주는 요소들은 많고 많아요. 이번 글에서는 그 중 캐스크의 크기에 관해 이야기해보려고 해요. 와인, 맥주, 위스키 등 다양한 주종에서 캐스크를 쓰지만, 이 글에서는 스카치 위스키에서 쓰는 캐스크 위주로 다뤄볼 예정이에요.
1. 툰(TUN)&고르다(Gorda)
가장 큰 통부터 들여다보죠. 이 ‘툰’이라는 캐스크는 정말 큰 캐스크랍니다. 무려 950리터 정도가 들어가죠. 주로 맥주 등을 발효하는 데에 쓰지만, 스카치위스키에서는 이 통을 매링(marring)하는 데 쓰곤 해요. 여러 통에서 나온 위스키를 병입하기 전에 이 큰 통에 넣고 몇 개월간 안정화시키는 데 쓰는 것이죠.
다만, 스카치위스키 규정상 700리터 이하의 통에서 숙성한 것만 숙성연수로 인정되기 때문에 이 통에서 위스키가 보낸 시간은 숙성연수로 인정되지 않는답니다.
발베니에서 사용하는 툰 캐스크
‘고르다’라는 캐스크도 툰 캐스크와 비슷한 용도로 쓰여요. 숙성의 막바지에 위스키들을 잘 섞는 데 쓰이는 캐스크이죠. 다만, 고르다 캐스크는 용량이 700리터이기 때문에, 이 캐스크에서 매링하더라도 숙성연수에 포함할 수 있어요.
2. 펀천(Puncheon)&벗(Butt)
셰리 벗 캐스크들
펀천은 쉐리와인이나 럼 등에 사용되는 캐스크이고, 벗은 쉐리와인에 사용되는 캐스크랍니다. 일반적으로 위스키 라벨에서 ‘쉐리 벗’ 혹은 ‘쉐리 펀천’ 등으로 표기되어 있어요.
벗은 약 500리터 정도, 펀천은 400~700리터 정도의 용량을 가지고 있어요. 둘의 모양은 아주 다른데, 벗은 헤드가 조금 좁고 스타브가 길어서 마름모꼴처럼 생겼어요. 반면 펀천은 상당히 퉁퉁하게 생겼죠. 이 사이즈의 오크통이 실질적으로 숙성에 쓰이는 데 쓰는 가장 큰 사이즈의 캐스크라고 보아도 무관합니다.
쉐리를 담았던 ‘쉐리 벗’ 들은 위스키를 2차 숙성, 즉 피니싱하는 데 쓰기도 하지만, 이 캐스크에서 쭉 숙성해서 내놓는 경우도 있습니다.
3. 바리끄(Barrique)
바리끄는 프랑스 쪽에서 주로 만들어지는 캐스크예요. 주로 와인이나 코냑을 숙성한 캐스크를 바리끄라고 부르죠.
와인의 경우 225리터, 코냑의 경우 300리터 정도의 캐스크예요. 프랑스 쪽에서 주로 만드는 캐스크이기 때문에 프렌치 오크로 만드는 경우가 자주 있죠. 이 캐스크도 주로 캐스크 피니싱 기법에 사용되고는 합니다. 하지만 ‘카발란 비노 바리끄’처럼 처음부터 이 캐스크에 숙성하는 경우도 있답니다.
4.아메리칸 스탠다드 배럴(ASB)& 혹스헤드
운송 중인 ASB
가장 많이 사용되는 캐스크입니다. 아메리칸 스탠다드 배럴은 미국의 쿠퍼리지에서 만들어지는, 미국 버번의 표준적인 캐스크 사이즈이죠. 생산량이 많은 만큼 제조 과정이 자동화된 부분이 많아서 목재의 가공이 균일한 편이에요. 그래서인지 내부 용적의 편차도 가장 적은 편에 속한답니다.
이 200리터들이 캐스크들은 1회 사용 이후 대부분 스카치위스키 증류소에서 구매해 가요. 당연한 일이지만, 빈 오크통을 그대로 운송하는 것은 부피 관점에서 굉장히 비효율적인 일이기 때문에 모두 분해되어 대서양을 건너게 되죠.
그리고 이 배럴을 재조립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바로 250리터짜리 ‘혹스헤드’ 예요. 5개의 ASB를 분해하면 4개의 혹스헤드를 만들 수 있는데, ASB와 크기 차이가 많이 나지 않으면서도 내부 용량은 50리터나 늘릴 수 있기 때문에 스카치 위스키 증류소에서 애용하는 캐스크이기도 해요. 원래 혹스헤드라는 단어는 15세기부터 오크통을 이르던 단어였지만, 요즈음은 재조립한 ASB를 뜻하는 말로 굳어졌어요.
5. 쿼터 캐스크& 옥타브
옥타브 캐스크의 사이즈
쿼터 캐스크는 4분의 1 캐스크라는 뜻인데, 그 기준이 쉐리 벗인지, ASB냐에 따라 달라져요.
쉐리 벗 사이즈의 4분의 1이면 125리터에 해당하죠. 한 캐스크당 약 100병의 위스키가 나오기 때문에 프라이빗 보틀링 등의 소규모 독립 병입에 자주 쓰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라프로익 쿼터 캐스크' 가 이 캐스크에 숙성한 제품이예요.
ASB의 4분의 1짜리 오크통은 50리터짜리 오크통으로, 옥타브 혹은 퍼킨이라고도 부릅니다, 맥주를 담는 캐스크로 사용되는 경우도 자주 있습니다. 과거에 스코틀랜드 보부상들이 육상운송에 편하도록 가지고 다녔던 사이즈의 오크통이기도 하죠.
아마 이쯤 오면, 그런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어요.
“다양한 캐스크가 있는 건 알겠고, 어디에 쓰이던 애들인지, 어디에 쓰이는지도 대충 알겠어. 근데 그게 왜 중요해?”
하지만 꽤 중요하답니다. 캐스크의 사이즈는 숙성의 강도를 결정하는, 아주 중요한 요소이니까요.
숙성의 과정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술이 얼마나 나무에 맞닿아 있는지'입니다. 그 ‘얼마나’는 공간적 표현일 수도 있고, 시간적 표현일 수도 있죠. 캐스크의 사이즈는 술이 나무에 맞닿는 면적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쳐요.
이 표를 보면, 오크통에 들어가는 술의 부피와 오크통 내부의 표면적을 알 수 있어요. 40리터들이 옥타브 캐스크에서는 1제곱미터의 내부 표면적 당 48.8리터의 술이 숙성되지만, 500리터들이 쉐리 벗에서는 1제곱미터의 내부 표면적당 124리터의 술이 숙성되죠.
단적으로 보면 옥타브 캐스크가 쉐리 벗보다 2.5배 빠르게 숙성되는 셈이에요. 증발률로 보면 더욱 차이가 벌어지죠. 500리터짜리 쉐리 벗을 스코틀랜드에서 숙성하면 연간 1~2퍼센트의 증발만 이루어지지만, 같은 곳에서 옥타브 캐스크로 숙성하면 연 7% 정도의 증발도 흔히 일어나니까요.
버번 캐스크에 숙성한 원액을 셰리 캐스크에 피니시한 발베니 더블우드
그래서 위스키 메이커들은 자신이 원하는 맛의 위스키를 만들기 위해 캐스크를 계획적으로 사용해요. 예를 들어 버번 캐스크에서 10년간 숙성한 위스키를 쉐리 옥타브 캐스크에서 6개월만 추가 숙성해 강렬한 쉐리 피니시를 만들어내거나, 500리터들이 쉐리 벗에 장기간 숙성해 적은 증발량을 노리기도 해요.
우리도 위스키를 마실 때, 어떤 캐스크에 얼마나 숙성했는지를 보고 맛을 예상할 수 있죠. 뚜껑을 따서 맛을 보기 전에는 위스키의 맛을 모르기 때문에, 이 캐스크를 통해 맛을 예상한다면 조금 더 현명한 소비가 가능하지 않을까요?
오늘은 <캐스크 만들기> 기획전 중 두번째 시리즈인 '사이즈 고르기' 이야기를 해봤어요. 앞으로 계속 될 캐스크 만들기 기획전 많은 기대 부탁드려요 ㅎㅎ 다양한 캐스크의 크기와 그들의 특성까지 알고 나니, 술이 만들어지는 여정을 함께한 기분이지 않나요? 😋
그럼 우리는 다음에 또 재미있는 술 이야기로 만나요.
이만 안녕, 다음에 또 DM 할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