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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 017 캐스크 기획전 <캐스크 만들기> 3편. 캐스크의 전숙성술
위스키는 굉장히 다양한 캐스크를 사용해서 만들어집니다. 캐스크를 분류하는 방법은 수종에 따라, 지역에 따라, 크기에 따라, 전에 담겨 있던 술이 무엇이냐에 따라 다양하게 분류됩니다.
그리고 이 중 맛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다고 인식되는 건 역시 “전에 숙성되었던 술이 무엇인지”이죠. 이 전숙성술의 여부가 위스키의 색, 맛, 전반적인 느낌까지, 매우 많은 부분을 좌우하기 때문입니다.
1. 버진 오크
버진 오크를 사용한 ‘딘스톤 버진 오크’
특징적 노트: 우디함, 스파이시함, 바닐라
버진 오크라는 것은 한 번도 사용되지 않았던 캐스크를 뜻합니다. 즉 라벨에 ‘버진 오크’가 쓰여 있다면, 이 위스키가 해당 통의 첫 입주자인 셈이죠.
오크통을 구성하는 참나무는 우디하고 톡 쏘는 맛을 가진 ‘타닌’ 이라는 성분을 다량 함유하고 있는데, 오크통에 처음 숙성되는 술에 이 타닌 성분이 많이 들어가게 됩니다. 그 이후에 숙성되는 술은 타닌의 영향을 적게 받게 되죠.
그뿐만이 아니라, 새 오크통을 챠링하는 과정에서 나무의 ‘리그닌’이라는 성분이 바닐라향을 내는 ‘바닐린’이라는 성분으로 변환되는데, 규정상 무조건 새 캐스크를 쓰게 되어 있는 버번 위스키에서 강한 우디함과 바닐라 향을 느끼는 것이 바로 이 타닌과 리그닌 때문이랍니다.
하지만 스카치 위스키에서도 버진 오크를 가끔 쓰고는 해요. 나올 때마다 열풍이 부는 ‘글렌알라키 10cs’에도 버진 오크에 숙성된 원액이 들어간답니다.
2. Ex-버번 오크
ex-버진 캐스크를 사용한 글렌그란트 15
특징적 노트: 바닐라, 과일, 꽃, 시트러스
스카치위스키 업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오크통입니다. 버번은 규정상 ‘새 오크통’ 만 쓰게 되어 있기 때문에, 버려질 운명이었던 오크통들을 스카치 업계에서 저렴하게 사들이는 것이죠.
버번의 엄청난 생산량만큼, 버번이 거쳐 갔던 오크통들도 매우 많습니다. 버번이 새 오크통의 강렬한 풍미를 한번 빼주고, 그 이후 스카치 위스키가 들어가는 것이죠.
그 결과 굉장히 우디한 버번과는 다르게, 버번 캐스크에서 숙성한 스카치 위스키는 황금빛 빛깔과 가볍고 부드러운 맛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빵 같은 바닐라 노트와 꽃, 꿀과 같은 화사한 노트들이 느껴지기도 하죠.
좋은 생산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훌륭한 맛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여러모로 사랑받는 캐스크입니다. 국내에서는 ‘글렌그란트’ 가 버번캐스크 명가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사과와 카라멜, 꿀 같은 노트가 일품이죠.
3. Ex-셰리 캐스크
ex-셰리 캐스크를 사용한 글렌드로낙 12
특징적 노트: 건과일, 건자두, 계피와 정향을 비롯한 향신료
위스키의 판매량을 껑충 뛰게 하는 마법의 단어, 쉐리 캐스크입니다. 스페인의 쉐리 와인을 숙성했던 캐스크에 위스키를 숙성하는 것이죠.
이 쉐리 와인이 ‘진짜’ 쉐리 와인은 아니긴 하지만, 어쨌든 셰리 캐스크에 숙성된 위스키는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진하고 풍부한 적갈색 빛깔과 깊은 풍미는 언제나 환영받죠.
하지만 셰리 캐스크도 가 같은 셰리 캐스크는 아닙니다. 쉐리 캐스크 안에서도 종류가 다양하죠. 가장 많이 쓰이는 셰리 캐스크는 ‘올로로소 셰리’ 와 ‘페드로 히메네즈’ ‘피노’ 셰리 입니다.
‘올로로소 셰리’는 팔로미노 품종의 포도로 만들어지는 주정 강화 와인입니다. 17%~18% 정도의 도수를 가진 이 호박색 쉐리 와인이 거쳐간 통에서 숙성된 위스키는 익은 과일, 말린 과일, 우디함, 견과류, 향신료 같은 풍미를 품게 되죠.
19년도 이전의 글렌드로낙 18년이 바로 이 올로로소 쉐리 캐스크에서 숙성된 원액만을 담았는데, 익은 과일과 화사하고 녹진한 향미에 깜짝 놀란 기억이 있네요.
‘페드로 히메네즈 셰리’, 혹은 ‘PX 셰리’는 페드로 히메네즈 품종의 포도로 만들어진 주정 강화 와인이죠. 거의 리큐르 정도로 달고 끈적한 이 와인이 숙성되었던 캐스크에 위스키를 숙성하게 되면, 검은 베리류, 초콜릿, 카카오 같은 달콤한 풍미를 가지게 됩니다.
제가 마셔 보았던 것 중에서는 ‘블라드녹 19년’이 있네요. 스피릿의 질감과 어우러져 굉장히 맛있게 마셨었습니다.
‘피노 셰리’는 효모가 죽지 않는 15% 정도의 도수로 주정 강화를 거친 와인입니다. 덕분에 와인 표면의 ‘플로르’라는 효모 층이 죽지 않아 산화 숙성을 방지하죠.
그래서인지 이 피노 와인은 상당히 가볍고 경쾌한 맛을 냅니다. 이 캐스크에 숙성한 위스키는 옅은 황금빛 빛깔과 가벼운 시트러스, 새콤한 과일 노트를 가지고 있습니다.
4. 포트 캐스크
포트 캐스크에서 피니시한 ‘아란 포트 캐스크 피니시’
특징적 노트: 탄닌감, 시트러스함, 붉은 베리 노트
쉐리 와인이 스페인의 주정강화 와인이라면, 포트 와인은 포르투갈의 주정강화 와인입니다. 매우 달콤하고 직관적인 풍미 덕분에 술을 좋아하지 않던 분들도 곧잘 마실 수 있는 술이죠.
이 포트 와인은 ‘포트 파이프’ 라고 하는 오크통에 숙성되는데, 이 캐스크에 위스키를 숙성하기도 합니다. 포트 와인의 색 덕분인지, 포트 캐스크에 숙성한 위스키도 붉은 빛깔의 암갈색을 띕니다.
굉장히 달콤하고, 시트러스함과 생생한 베리, 다크초콜릿 같은 풍미를 가지게 되죠. 아란, 글렌모렌지를 비롯한 증류소에서 이 포트 캐스크에 위스키를 추가 숙성한 위스키를 내놓고 있습니다. 특히 글렌모렌지의 ‘글렌모렌지 퀸타 루반’은 가격에 비해 매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위스키이기도 합니다.
5. 럼 캐스크
럼 캐스크를 사용한 발베니 14년 캐리비안 캐스크
특징적 노트: 트로피컬한 과일, 풀, 꽃
해양 지방에서 만들어지는 럼은 달큰하고 트로피컬한 향미를 가진 증류주입니다. 펑키한, 풍선껌 같은 향도 나고는 하죠. 향과 맛이 강렬하기 때문에 이 럼이 거쳐 간 캐스크에 숙성된 위스키도 강한 영향을 받습니다.
럼 캐스크 숙성 위스키들은 바닐라, 시트러스, 꿀, 당밀, 캐러멜, 건과일 풍미를 가지게 되죠. 럼 캐스크를 사용한 위스키 중 가장 유명한 위스키 중 하나가 ‘글렌피딕 21년 그랑 리제르바’ 인데요, 이 위스키도 럼 캐스크에서 추가 숙성되어 부드러운 바닐라와 캐러멜 풍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다양한 캐스크를 사용하고 있어요.
그 외에도 정말 다양한 위스키 브랜드에서, 다양한 캐스크를 사용하는 도전이 이루어지고 있어요.
데킬라, 메즈칼 캐스크를 비롯해 진, 바이주 같은 스피릿을 담아 두었던 캐스크를 구해다 숙성시키기도 하고, 아일라 위스키처럼 시그니쳐한 풍미가 강렬한 위스키가 숙성되었던 캐스크를 이용해 독특한 맛을 입혀내고는 하죠.
그뿐 아니라 포르투갈의 마데이라, 스페인의 리오하, 프랑스의 소테른, 헝가리의 토카이 등 이름난 와인들의 캐스크에다 숙성하는 경우도 늘어났어요.
빌리 워커 씨의 말을 빌리자면, 현대의 마스터 디스틸러들은 도전적인 실험 정신과 창의성으로 계속 새로운 시도를 하며, 풍부한 맛과 안정적인 밸런스를 추구하고 있어요.
위스키의 인기가 높아지는 만큼, 더 많은 창의성과 독창성을 가진 위스키들이 속속 등장할 거예요. 기대하셔도 좋아요!
그럼 우리는 다음에 또 재미있는 술 이야기로 만나요.
이만 안녕, 다음 주에 또 DM 할게~ 💌